유명인 편지

프랑스 작가 발자크가 한스카 백작 부인에게 보낸 편지

필링박스 2021. 7. 21. 14:4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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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 프랑스 작가 오노레 드 발자크는 1833년 폴란드의 백작 부인 한스카를 처음 만났다. 
두 사람은 한스카 남편이 죽은 뒤 결혼하기로 약속했으며, 긴 기다림 끝에 1849년 결혼하는 데 성공했다. 
그러나 그때는 두 사람도 늙었고, 그나마 발자크는 결혼 후 석 달 만에 세상을 떠나고 말았다.
  다음 편지는 발자크가 보낸 수많은 연애 편지 중 하나이다. 


  난 내일 떠나오. 내 자리는 이미 예약이 되어 있고, 그전에 이 편지를 끝내려고 하오.
  내 머리는 마치 텅빈 호박과도 같소. 
말할 수 없이 복잡한 상태에 있소. 파리에서도 이렇다면, 다시 돌아오리다. 
그 어떤 것에 대해서도 아무 느낌이 없소. 
살고 싶은 욕망도 없고, 아주 희미한 기력조차도 갖고 있지 않소. 
의지는 모두 도망가버린 것 같소.

  좀 상태가 좋아지면 마양스에서 편지를 쓰리다. 
그러나 지금은 내 상황을, 백 살이 넘게 산 퐁테넬이라는 사람이 ‘존재의 어려움’이라고 표현한 것 같은 그런 상태로 표현할 수밖에 없구려.

  당신 곁을 떠난 후론 웃어본 적이 없소. 
영어로 표현하자면 ‘울화’(spleen)인데, 마음속의 울화이고, 이중의 화병이기 때문에 더욱 심각한 것이오.

  안녕히, 내 사랑하는 별, 무한한 축복이 있기를! 
언젠가는 이렇게 나를 억누르고 있는 생각들을 당신에게 털어놓을 기회가 있을 거요. 
오늘은 그저 내 마음의 평안을 위해, 당신을 너무나도 사랑하고 있다는 것만 얘기하려오.

  이번 8월, 9월이 지나고 나니까, 난 오로지 당신 곁에서만 살 수 있다는 것을 알았소. 
당신의 부재는 내겐 곧 죽음이오. 
아! 트로이스트 다리 끝에 우아하게 위치한 그 조그마한 정원에서 당신과 함께 거닐며 얘기 나눌 때, 얼마나 행복했던가.
  그곳에는 언젠가 나뭇잎들을 쓸어모으게 될 빗자루 하나만 덩그러니 놓여 있었지요.
  내겐 그곳이 온 유럽을 통틀어서 가장 아름다운 정원이었소. 
왜냐하면 당신이 그곳에 있었기에. 당신 주변을 둘러싸고 있는 아주 조그마한 물체일지라도 이상하게 완벽히 다시 떠올릴 수 있는 순간이 있소. 
검은 레이스로 가장자리를 두른 쿠션, 당신이 기대고 있던 그 쿠션에 점이 몇 개인지 셀 수 있을 것 같소.

  새롭게 뇌리에 떠오르는 이 아름다운 과거가 주는 힘과 행복은 얼마나 큰지...  
그 순간은 생명 이상이오. 
그 시간 속에 모든 생애가 모두 담겨 있기에, 고통 속의 내 영혼에서 범람하는 기억의 덕분으로, 이 지루한 실제의 삶에서 유리되어, 그런 조그만 물질의 추억이 주는 달콤함과 행복이란…. 
그것이 과거의 그 행복한 날을 모두 되살려주지 못하는데도. 이 느낌 때문에 얼마나 행복한지 모르오.

  잘 있어요! 
이 편지를 우체통에 넣으려고 하오. 
당신 아이들에게 따뜻한 축복이 깃들기를. 리레테에게 우정의 인사를, 
그리고 당신에게는 내 심장의 모든 것, 내 영혼, 내 머리의 모든 것을...

  (우편함에 넣기 전에) 이 편지들을 넣으면서 어떤 감정이 날 사로잡았는지를 만일 당신이 안다면. 이 편지들을 따라 내 영혼은 당신에게로 날아갔소. 
나는 마치 미친 사람처럼 편지에게 얘기했소. 수많은 사연을. 
마치 미친 사람처럼 그들이 그 얘기를 담아가서 당신에게 반복해 주리라 생각했던 거요. 
이 편지에 내가 어떻게 스며들지, 당신 손에 어떻게 느껴질지 이해하기 힘드오. 
그리고 나는 여기 이 우편함 밖에 왜 그대로 남아 있는지도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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